라틴 아메리카에서 조용히, 오래 머물기 좋은 도시를 찾는다면 쿠엥카는 빠지지 않는다. 고도 2,500m 안데스 고원에 자리한 이 도시는, 남미의 번잡함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유럽풍 도시 구조, 안정된 인프라, 온화한 기후까지. 외국인 거주자가 유난히 많은 이유는 단순히 저렴한 생활비 때문이 아니다.
고요한 고원 도시의 여유 – 쿠엥카의 기본적인 매력
쿠엥카는 에콰도르 제3의 도시이자, 안데스 산맥 중앙에 위치해 있다. 주요 관광지로 알려진 키토나 과야킬과 달리, 이 도시는 관광보다 삶을 위한 도시라는 인상이 더 강하다. 기후는 연중 내내 10~25도를 오가는 온대 고원성 기후. 덥지도 춥지도 않아 에어컨, 난방 없이 지내는 것이 가능하다. 도시 구조는 스페인 식민지 시기의 유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걷기 좋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 지구에서는 산책만으로도 시간을 느리게 보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은퇴자의 도시’가 된 이유 – 생활비와 인프라
쿠엥카는 오랜 시간 동안 미국·캐나다 은퇴자들에게 인기를 끌어왔다. 실제로 북미권 은퇴자 커뮤니티가 매우 활성화되어 있으며, 현지 카페나 클럽에서 영어가 오히려 흔히 들린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 월세 평균 250~400달러 (1 베드룸 아파트 기준) - 식비는 한 달 약 150~200달러, 외식은 3~5달러면 충분 - 공공 병원 및 사설 병원의 수준이 높고, 의료비가 저렴 - 치안이 안정적이고, 경찰 순찰이 자주 이루어짐 이처럼 삶의 기본 요소가 갖춰진 도시라는 점은, 쿠엥카를 단순한 여행지가 아닌 장기 체류지로 만들어준다.
유럽과 라틴이 어우러진 도시 미학
쿠엥카는 외형적으로도 독특하다. 구시가지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 고풍스러운 광장, 타일 지붕의 저층 건물들이 이어진다. 마치 유럽의 작은 도시를 축소해 안데스에 옮겨 놓은 듯한 분위기다.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토메밤바 강(Río Tomebamba)은 일상의 중심이자 여유의 상징이다. 강가에는 산책로와 벤치, 예술가들의 노점이 줄지어 있고, 현지 주민들과 외국인 체류자들이 뒤섞여 조용히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도시는 대중교통보다 도보 생활에 적합하게 설계돼 있으며, 대부분의 생활은 중심부에서 해결할 수 있다.
문화 예술과 로컬 삶이 살아있는 도시
쿠엥카는 예술적 감수성이 살아 있는 도시다. 대형 박물관보다 작은 공방, 예술시장, 스트리트 아트 등 도시 전체가 하나의 갤러리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매주 열리는 주말 마켓에서는 에콰도르 전통 수공예품, 직물, 도자기 등이 다양하게 거래된다. 또한, 음악과 춤이 생활 곳곳에 묻어 있어, 축제가 아닌 평일에도 작은 공연이 자연스럽게 펼쳐지기도 한다. 현지인의 일상 속에 스며든 예술 덕분에, 이 도시는 ‘보는 도시’가 아니라 ‘머무는 도시’로 평가받는다.
소소한 삶을 중시한다면, 쿠엥카는 정답이 될 수 있다
인터넷 속도는 남미 기준 양호한 편이며, 원격근무자나 디지털노마드에게도 적합하다. 많은 코워킹 스페이스는 없지만, 조용한 카페와 빵집이 작업 공간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쿠엥카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들의 태도다. 친절하지만 강요하지 않고, 외국인에게 과도한 관심을 두지 않는 편안한 거리감이 일상을 안정적으로 만든다.
결론: 빠른 도시가 아닌, 깊은 도시를 원할 때
쿠엥카는 속도를 자랑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그 틈에서 생각하고, 읽고, 걷고, 나를 돌볼 수 있는 도시다. 여행지로는 조용할 수 있고, 체험할 거리는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살기 좋은 도시’의 조건만 따져본다면, 쿠엥카는 단연 남미에서 가장 균형 잡힌 도시 중 하나다. 작은 도시가 주는 위안, 고요한 일상이 주는 힘, 그 모든 것이 이곳엔 있다.